2011. 10. 6. 13:46 펌질

'양극화의 문제'


원글
KB은행의 인문학칼럼에 연재되고 있는 박경철 씨의 신화폐론 중 2010년 10월 칼럼입니다.

공업화가 끝나고 주력업종이 서비스업으로 전환된 나라들은 예외 없이 양극화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 문제는 중국 등 한참 도시화, 공업화가 진행 중인 나라들에서도 심각하지만, 대신 이들 나라에서는 다양한 사회적 기회와 신분상승의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양극화에 대한 인식 자체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같은 양극화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하더라도, 선진국은 신분상승의 기회가 없고, 후발국은 신분상승의 기회가 열려 있기 때문에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양측의 심각도가 다른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앞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위협하는 양극화의 문제


예를 들어 미국 애플사는 미국 내 고용인원이 2만 5000명으로, 지난 분기 매출액 19조 원, 영업이익이 무려 5조 원이 넘는 것을 고려한다면 턱없이 적은 규모다. 또 마이크로 소프트의 경우에도 매출액이 거의 20조 원, 영업이익이 6조 원 가까이 되지만 고용규모는 6만여 명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전 세계 지사의 고용인원을 포함한 숫자다. 반면 애플의 아이폰을 하청 제조하는 대만의 팍스콘은 무려 25만 명을 고용하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상하이 지사에만 6,0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이 와중에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지난 금융위기 당시에도 비슷한 규모의 매출을 올렸지만, 직원을 감원한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실제 해고인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특성상 이런 고용이 정당화된다고 하더라도, 실제 하드웨어 제조판매사인 애플은 이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유는 막대한 이익 대부분이 미국 내 설비투자나 임금지출이 아닌, 애플의 내부 유보금(이익잉여금)과 주주 배당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많은 사람들이 애플의 매출이 아이튠스나 앱스토어 등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서 발생한다고 알고 있지만, 이 부분은 사실이 아니다. 애플의 이익을 살펴보면 앱스토어 등은 하드웨어에 대한 소비자 충성도를 유발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것일 뿐, 실제 애플은 컴퓨터 등 IT 하드웨어 기기 제조업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반면 애플 매출액의 거의 50%에 불과한 소니의 경우 전체 매출이 10조 2,444억 원인데 반해 18만 5000명의 직원을 고용했다. 따라서 소니사의 이익의 상당부분은 직원의 임금이나 복지비용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때문에 소니의 영업이익은 가까스로 적자를 면하는 수준이었다.
이 부분을 단순히 두 회사 제품의 혁신성이나 성장성의 문제로 보는 것은 지극히 단선적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는 ‘수확체증’이 가능하다. 개발비용과 진입장벽을 쌓아 독보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데는 막대한 인력과 자본이 필요하지만, 일단 과점적 지위를 쌓는데 성공하면 이후에는 투입비는 거의 고정되는 데 비해 이익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의 경우에는 다르다. 애플은 아무리 제품의 혁신성이 돋보이고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제조업이다. 따라서 애플은 투입비를 늘리면 아웃풋이 줄어드는 수확체감의 법칙을 거스를 수가 없다. 그럼에도 애플이 소니, 혹은 삼성전자와 비교도 안 되는 영업이익률, 즉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수준의 영업이익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IT의 본가답게, 혁신적인 시스템 구축 덕분이었다.


IT 기술발전은 재앙인가, 축복인가


미국에 있는 애플 본사는 R&D와 마케팅부서만 남기고, 제조는 중국에서 부품은 한국과 대만, 일본에서 조달하는 것이다. 즉 애플은 미국 본사에서 하다못해 제품케이스 포장작업하나 하지 않고, 고스란히 외부에서 아웃소싱을 통해 제조, 물류, AS 등을 처리하는 것이다.
이 경우 애플은 수확체감의 법칙을 거스를 수가 있다. 제조업의 성장성은 판매량과 점유율의 확대에 있지만, 영업이익률을 일정수준 이상 증가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임에도 애플이 그것을 이루어낸 비밀이다.
문제는 이렇게 효율적인 애플의 시스템이 애플만의 것이냐는 점,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라는 점이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기업들이 유효수요의 감소에도 뛰어난 이익을 낸 이유는 앞서 칼럼들에서 지적한 대로 인건비 등의 변동비 축소, 자본의 국경 없는 세계화가 원인이고, 애플은 이 원리를 가장 충실하게 잘 따른 것이다.
발달된 IT 기술이 기업의 부가가치를 증폭시켰지만, 반면 사회 전체적으로 고용과 기회측면에서 재앙이었던 이유다. IT의 발전은 CEO가 본사에 앉아 키보드만 두드리면, 가장 싼 값에 조달할 수 있는 부품 공급처를 파악하게 되고, 전 세계에서 생산과 재고를 파악하며, 제조와 물류까지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했지만, 대신 글로벌 일자리 축소를 가져온 근본 이유인 것이다. 물론 미국의 일자리 축소가 개도국의 일자리 증가로 고스란히 전이되었다면, 지구촌 전체로서는 균형을 찾아가는 것일 수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즉 미국의 일자리 축소 분의 일부만 전이되었기 때문이다.


양극화의 마지막 국면_임금노동자의 운명은?


이 부분을 철학적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제 전 세계는 잉여산출의 국면에서 잉여축소모형으로 접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무수한 패자를 양산하며, 승자독식의 마지막 스퍼트의 국면임을 알 수 있다.
IT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기회의 상당 부분은 잉여에서 발생했다. 이를테면 지금 우리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들은 엄청난 분량의 저장장치를 놀리고 있다. 제조회사들이 장착한 하드디스크는 실제 사용자의 필요와 무관하게 스팩이라는 이름으로 확대되었고, 사용자 역시 자신의 컴퓨터 저장장치에 과연 그만한 분량의 하드디스크 저장용량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 없이, 높은 사양의 기기에만 집착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잉여공간들은 그만큼의 기회이기도 했다. 어디선가 하드디스크 제조공장에서는 근로자가 일하고 있고, 그 근로자들은 우리 책상의 잉여만큼 일자리를 더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IT 기술의 발달은 하드디스크 공장의 근로자들이 조만간 일자리를 잃게 할 것이다. 최근 등장한 ‘스마트 그리딩’의 포괄적 개념이 현실화되면, 지금 이 순간 작업 중인 필자의 원고는 무선인터넷을 통해 애플이나 구글, 혹은 KT 가 제공하는 클라우딩 서버로 전송될 것이고, 필자의 컴퓨터에는 저장장치가 사라질 날이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과거 새로운 산업은 사회적 파이를 키우는데 기여했지만, 지금 우리가 말하는 블루오션은 상대적으로 레드오션의 기회를 구축하고, 절멸시키면서 승자승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거기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는 일부 소수에 집중되고, 감당할 수 없는 잉여는 금융자본화 했다. 또 여기에 미래에 불안을 느낀 근로자들은 자신의 소득을 미래에 대한 대비를 위해 임금소득의 상당부분을 저장을 위한 목적으로 퇴장시키는데 주력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퇴장된 임금들은 다시 금융자본의 먹이가 되고, 근로자들은 점점 더 가공할만한 먹구름이 몰려오는 상황을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는 것이 바로 오늘의 문제다.

결국 수확체감은 사회적 생태계를 보호하는 원리이고, 이것을 거스르는 노력들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던져진 고민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과연 우리에게 해법이 존재하는 것일까?

Posted by pat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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